회원가입 | 고객센터 |
DESIGNONEX
디자인원엑스
DX서비스
Q&A
지식공유
DX마켓
쇼핑몰
통계
공지사항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Latest Version
DXCMS v10.4.02026.06.15 배포 D+133일 (4개월)
  • 169다운로드
  • 0테마
  • 63플러그인
  • 7스킨

비가 오지 않는 도시 — 창작소설

D DX관리자
2026.10.26 03:18(수정됨) 5 0 1

A FICTIONAL NOVELLA

비가 오지 않는 도시

1쪽
A FICTIONAL NOVELLA 비가 오지 않는 도시 잊힌 이름과 돌아온 비에 관한 이야기 창작소설
2쪽
프롤로그 도시는 17년 동안 비를 잊고 있었다. 기상청은 그것을 대기의 장기 정체라고 불렀고, 시청은 물 절약 정책의 성과라고 홍보했다. 사람들은처음 몇 해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그 뒤로는 고개를 숙이는 법을 배웠다. 우산은 골동품 가게의장식이 되었고, 아이들은 빗소리를 동화 속 효과음으로만 알았다. 그런데도 매일 새벽 네 시 십칠 분이면, 오래된 중앙역의 폐쇄된 3번 승강장에서 누군가 우산을 펼쳤다. 그 우산 아래에는 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낡은 회색 코트, 젖은 구두, 그리고 손에 든 작은 유리병. 병속에는 물이 아니라 빗소리가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노인이라고 불렀다. 다만 역무원 한 사람만은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는 노인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윤은 그 이름을 몰랐다. 적어도 그날 밤까지는. 비가 오지 않는 도시01
3쪽
1장. 유리병 속의 날씨 서윤은 도시기록보존소 지하 2층에서 일했다.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붙이고, 버려진 문서의 먼지를 털고, 누구도 찾지 않는 물건에 보관 번호를 부여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 일을좋아했다. 잊힌 물건들은사람처럼변명하지 않았다. 그날 야간근무가끝날 무렵, 회색봉투하나가 책상위에놓여있었다.발신인도접수번호도없었다. 봉투안에는 손바닥만 한 유리병과접힌종이가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단한 문장만 적혀있었다. ‘비가 오기전에, 네가 잊은 이름을 찾아라.’ 서윤은웃으려 했다. 하지만 병을 들어 올리는순간웃음이멎었다. 유리 안쪽에서 아주작은 소리가들렸다. 처음에는 낡은 라디오의잡음같았다.귀를 가까이 대자, 그것은 분명한 빗소리였다. 지붕을 두드리고, 처마끝에서떨어지고, 물웅덩이를 가볍게흔드는 소리. 그 소리는 서윤의 기억보다 먼저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일곱살때의여름을떠올렸다. 비가쏟아지던골목, 젖은운동화, 누군가의 손을놓치지 않으려고필사적으로쥐던작은 손. 그리고 물에 번져끝내읽을수없게 된 이름표. 비가 오지 않는 도시02
4쪽
2장. 기록되지 않은 사람 보존소의 오래된자료에는 도시의공식연표가 있었다.마지막강우는 17년전8월9일, 밤 11시 52분. 그날 이후강수량은측정 가능한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기록은완벽해 보였다.완벽한 기록은 대개누군가를빼놓고완성된다. 서윤은봉투의종이를자외선판독기에 올렸다.종이 아래쪽에 지워진글자가드러났다.‘한이…’까지읽힌 뒤잉크가끊겼다. 그녀는 인명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한이준, 한이서, 한이안. 이름은수천개였지만 어느것도 가슴속빈자리와맞지 않았다. 그빈자리는 오래전부터거기 있었고, 서윤은 그걸슬픔이 아니라 성격이라고생각하며살아왔다. 새벽 네 시 십칠 분, 그녀는 중앙역으로향했다. 폐쇄된 3번 승강장에는 먼지가내려앉아 있었고,선로위로는잡초가자랐다. 그곳에 회색 코트의 노인이 서 있었다. 우산은 펼쳐져있었지만 하늘은맑았다. “병을받았군요.”노인이말했다. “이 안에뭐가 들었죠?” “당신이견디지못해서세상에맡긴것.” “제기억을말하는건가요?” 노인은 고개를저었다. “기억은당신것이지만, 비는 누구의 것도 아니오.” 비가 오지 않는 도시03
5쪽
3장.마지막강우 노인은자신을 강우관측사였다고 소개했다. 이름은 강도윤.마지막비가내리던날, 그는 도시의북쪽관측소에서근무하고 있었다.공식 기록에따르면 그날의폭우는짧았고피해도제한적이었다. 하지만실제로는 도시의 절반이잠길만큼거대한 비가내렸다고 했다. “왜기록이달라요?” “사람들은 물보다 진실을더무서워하오.” 도윤은 그날 강변지하터널에서 사고가 있었다고말했다.터널은 불법으로운영되던대피소와연결되어 있었고,폭우가밀려들 때수십명이 안에갇혔다. 구조대는통로를열기위해 몇 시간이나싸웠지만, 수문은끝내열리지 않았다. 서윤은 손가락끝이차가워지는 것을느꼈다. 그날의 기억은 사진처럼돌아오지 않았다. 대신몸이 먼저알았다.축축한콘크리트냄새, 누군가의 기침, 어둠속에서 작은 손이 그녀의 손목을잡던감각. “거기 누가 있었죠?”그녀가 물었다. 도윤은 대답대신병을 가리켰다. “빗소리를끝까지 들으면, 이름이떠오를거요.” 비가 오지 않는 도시04
6쪽
4장. 이름의 무게 서윤은집으로 돌아와병을 식탁위에놓았다. 창밖에는 먼지낀고층건물들이줄지어 서 있었다.광고판은‘물없는 미래,더깨끗한내일’을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그녀는광고의밝은얼굴들이 어쩐지 장례식장의조문객처럼보인다고생각했다. 병을열자방안의공기가바뀌었다. 아주먼곳에서부터비가 다가오는듯했다. 빗소리 사이로 아이의웃음이 들렸다. 이어서 누군가가말했다. “서윤아, 손놓지마.”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무릎을 부딪쳤다.목소리는낯설지 않았다.너무익숙해서 오히려 알아볼수없었다. 기억이란때로 문이 아니라 벽이다. 오래바라볼수록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잊게 된다. 서윤은 손바닥으로입을막았다. 그녀에게는 어린시절의 사진이거의없었다. 어머니는 사진을 정리하다잃어버렸다고 했고, 아버지는 그 이야기가나올 때마다 창문을닫았다. 가족의 과거는 늘 날씨처럼말할수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병을 다시닫았다. 그러나소리는멈추지 않았다. 유리표면 안쪽에서 빗방울이맺혔다가흘러내렸다. 그순간서윤은 알았다. 병 안에 든 것은 빗소리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마지막으로 불렀던이름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05
7쪽
5장. 지하의 문 도윤은 다음 날 밤 서윤을 도시북쪽의 폐쇄된 지하터널로 데려갔다.입구는콘크리트 벽으로막혀있었고, 벽에는‘안전상영구 폐쇄’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문구 아래로는 오래된 손톱자국같은긁힘이남아 있었다. 도윤은 벽의세번째타일을눌렀다. 안쪽에서금속이움직이는 소리가났다. 작은 문이열리고,습한공기가흘러나왔다. 서윤은숨을삼켰다. 1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는데도 그곳은 젖어 있었다. “물이 사라진 게 아니오.”도윤이말했다.“사람들이 물이 지나간길을 지워버린거지.” 터널벽에는 손으로 그린표시들이남아 있었다. 화살표, 날짜, 아이들이 그린집과 해. 누군가는 벽에키를재는선을 그어놓았다.마지막선옆에는‘유진, 8살’이라고 적혀있었다. 서윤은 그 이름을읽는순간벽을짚었다.몸안에서 오래잠든종이 한 장이찢어지는듯한 소리가났다. 유진. 그녀는 이름을 기억했다. 하지만얼굴은 아직돌아오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06
8쪽
6장. 아이가 그린하늘 터널안쪽에는 작은방이 있었다. 구조대가임시 대피소로쓰던곳이었다. 벽마다 아이들이 그린그림이 붙어 있었다.파란하늘, 노란집,웃는 사람들. 비가내리는 그림에는 빗방울마다 이름이 적혀있었다. 누군가에게 비는재난이었고, 누군가에게는세상에 있는모든 것이 아직살아 있다는증거였다. 서윤은 그림한 장앞에멈췄다. 두 아이가 손을잡고 서 있었다. 한 아이는짧은머리, 다른아이는머리카락을양갈래로묶었다. 아래에는삐뚤빼뚤한글씨가 있었다. ‘언니와나. 비가 오면집에 가자.’ 그림의뒷면에는 날짜가 적혀있었다.마지막강우가 시작된 날이었다. “유진은 누구죠?”서윤이 물었다. “당신의 동생이오.” 말은간단했지만, 그말이닿기까지 17년이걸렸다. 서윤은 벽에 기대주저앉았다. 그녀에게는 동생이있었다. 동생의 이름을 불렀고,함께밥을먹었고, 비 오는 날이면같은 우산 아래걸었다. 그런데 그녀의삶에는 동생이없었다.세상은 그빈자리를너무 매끄럽게메워놓았다. “왜저는 기억하지못하죠?” 도윤은 오래침묵하다말했다. “살아남은 아이가죽은 아이의 이름을놓아버리면, 어른들은 그걸회복이라고 부르오.” 비가 오지 않는 도시07
9쪽
7장.수문 터널끝에는거대한수문이 있었다.철문은녹슬어 있었고, 손잡이에는 오래된봉인테이프가겹겹이붙어 있었다. 도윤은수문이 도시의 물길을바꾼장치라고 설명했다.폭우가 시작되었을 때, 시당국은상업지구를 보호하기위해 강물을 지하저류시설로 돌렸다. 그러나시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문을열면 물이 다시흐를까요?” “물은 이미흐르고 있소. 다만 사람들이 그 소리를듣지못하게 했지.” 서윤은수문에 손을댔다.차가운금속 아래에서 아주미세한떨림이느껴졌다. 그떨림은심장박동같기도 했고,멀리서달려오는열차같기도 했다. 도윤은 작은열쇠를건넸다.“문을열면 기록도 돌아올거요. 사람들은 기억하고싶지 않은 일을 기억하게 되겠지.” “그럼진실을 알게 되겠네요.” “진실은언제나좋은 일을 하지는 않소. 하지만거짓말은반드시 누군가를혼자남겨두지.” 서윤은열쇠를쥐었다. 손바닥에자국이남을 만큼세게쥐었다. 그녀는 동생을 기억하고싶었다. 하지만 기억한다는 것은잃었다는 사실까지함께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08
10쪽
8장. 어머니의편지 집에 돌아온 서윤은 오래된 서랍을열었다. 어머니가세상을떠난뒤 한 번도 정리하지 않은 서랍이었다. 안에는 병원영수증,빛바랜리본, 그리고봉투하나가 있었다.봉투앞면에는 서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글씨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네가준비되었을 때읽어라.’ 편지에는 어머니가 오랫동안숨겨온 이야기가담겨있었다. 사고 뒤 시청은피해자명단을축소했고, 살아남은 가족들에게는침묵을권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싸우려 했다. 하지만 서윤은 사고 이후밤마다 비명을 지르며깨어났고, 동생의 이름을 부르다가숨이막혀쓰러졌다. 의사는 기억을자극하지 않는것이좋겠다고말했다. 어머니는딸을살리기위해 동생의 이름을집안에서 지웠다. 사진을없애고, 장난감을 버리고, 동생이있던방을 창고로바꾸었다. 그선택은 사랑에서 시작되었지만,결국집안의모든 사람을 고립시켰다. 편지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네가 잊어서살수있기를바랐다. 그런데 네가 잊은 뒤에도나는살아 있는척만 했다. 미안하다, 서윤아. 사랑은 때때로 사람을 지키려다 그 사람의세계를빼앗기도 하더라.’ 서윤은편지를접지못했다. 창밖은여전히말라 있었지만, 그녀의얼굴에는 오래된 비가흘렀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09
11쪽
9장. 빗소리를듣는 사람들 서윤은 다음 날 기록보존소의 서버실로 들어갔다.피해자명단은‘재난관련비공개자료’로 분류되어있었다.접근권한은 이미 폐기된 부서의 관리자에게묶여있었다. 서윤은종이 기록을 하나씩대조했다. 이름은삭제되었지만,숫자는남아 있었다. 식량배급표의수량,임시 숙소의침상수, 구조용담요의 개수.행정은 사람을 지울수있어도, 사람을위해 사용한 물건의흔적까지완전히없애지는못했다. 그녀는 기록을복원해공개 게시판에 올렸다. 몇 분 뒤접속이차단되었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가복사했고, 누군가가 화면을촬영했고, 누군가가자기 가족의 이름을발견했다. 도시곳곳에서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어떤이는 오래된 사진을꺼냈고, 어떤이는닫아 두었던방의 문을열었다.수십 년 동안말하지 않던가족사가 식탁위로 올라왔다. 이름을 부르는목소리들이거리의 소음을바꾸었다. 그날 밤, 서윤은 병을 창가에 두었다. 빗소리는더이상 작지 않았다.마치수많은 사람이 동시에숨을내쉬는 것처럼방안을채웠다. 그리고 아주먼곳에서, 동생의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이제집에 가자.” 비가 오지 않는 도시10
12쪽
10장. 문이열리는 밤 서윤과 도윤은 다시수문앞에섰다. 이번에는둘만 온 것이 아니었다. 기록을본사람들이 뒤따라왔다. 유가족,전직구조대원, 기록을 지운문서에 서명했던공무원, 그리고자신이 무엇을 잊었는지도 몰랐던시민들. 누구도큰소리를내지 않았다.모두가 오랫동안묻어둔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윤은열쇠를수문에꽂았다.금속이 돌아가는 소리는생각보다 작았다. 그러나그 작은 소리가터널전체에울렸다.잠금장치가풀리고,수문은천천히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다음, 벽 안쪽에서 물방울하나가떨어졌다.또하나. 그리고마침내, 아주가느다란물줄기가바닥을 가로질렀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울기 시작했다.울음은곧다른울음과 이어졌다. 그들은 물을 보고 우는 것이아니었다. 이제야슬퍼할수있게 된자신들을위해울고 있었다. 수문이완전히열리자, 지하에갇혀있던물이옛물길을따라흘렀다. 도시는 오랫동안막아둔숨을내쉬었다. 서윤은 손을뻗어 물을 만졌다.차갑고,맑고, 아무런변명도 하지 않는 물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1
13쪽
11장.첫번째빗방울 새벽 네 시 십칠 분, 도시의경보 시스템이 작동했다. 시민들은 처음에 그것이또다른공공캠페인인줄알았다. 하지만 하늘의 색이달라지고 있었다. 먼지로뿌옇던구름이짙어지더니,낮은바람이거리를훑었다. 사람들은집밖으로나왔다. 손바닥을펴고, 고개를 들고,말없이 기다렸다. 첫빗방울은 서윤의 손등에떨어졌다. 그것은 아주작았다.세상을바꾸기에는터무니없이 작고, 17년의침묵을씻기에는너무늦었다. 하지만 빗방울은 손등에서 미끄러져내려가바닥에닿았다. 그순간사람들은 비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실보다,자신들이 비를 기다릴수있는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먼저깨달았다. 아이들은 빗속에서웃었다. 어른들은웃는 법을 잊은얼굴로 하늘을바라보았다. 어떤사람은 무릎을꿇었고, 어떤사람은 두 손으로얼굴을 가렸다. 비는 누구도용서하지 않았고, 누구도심판하지 않았다. 그저모든얼굴위로내렸다. 서윤은 우산을 펼치지 않았다. 그녀는 젖고싶었다. 오랫동안자신에게허락하지 않았던감각을, 이제는몸으로받아들이고싶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2
14쪽
12장. 유진의 이름 비가 그친 뒤, 서윤은터널벽에남은 그림을복원하기위해 돌아왔다.습기를머금은종이는 가장자리부터부서지고 있었다. 그녀는 보존용종이를 대고,조심스럽게 그림을떼어냈다. 아이가 그린두 사람은여전히손을잡고 있었다. 그림속 하늘에는 비가내렸고, 빗방울마다 작은 이름이 적혀있었다. 서윤은 유진의 이름을 손끝으로따라갔다. 그녀는 이제얼굴도 기억할수있었다.앞니 하나가빠져웃을 때마다혀가 보이던아이.잠들기전에꼭물 한모금만더달라고 하던아이. 비 오는 날이면 창문에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그리던아이. 기억은한꺼번에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조각들이제자리로 돌아와, 오랫동안 비어 있던방에 불을켰다. 그녀는 동생이마지막순간에 무엇을생각했는지 알수없었다. 그걸상상으로채우고싶지도 않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타인의마지막을 대신써서는 안 된다고생각했다. 대신서윤은 이름을 소리내어 불렀다. “한유진.” 그 이름은터널안에서 한 번울리고, 젖은 벽을따라천천히사라졌다. 사라졌다고 해서없어진 것은아니었다. 어떤이름은 불리는순간부터다시세상에 속하게 된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3
15쪽
11장 뒤의 기록.증언 비가내린다음주, 시청앞광장에는긴줄이생겼다. 사람들은민원 서류대신오래된 기억을 들고왔다. 누군가는 그날의 버스표를, 누군가는 구조요청이 적힌종이를, 누군가는 이름이 지워진 가족사진을내밀었다. 첫번째증언자는퇴직한 소방관이었다. 그는 사고당시수문을열라는명령을받았지만, 상부에서 승인을내리지 않았다고말했다. 두 번째증언자는당시 기록담당자였다. 그는명단을 고치라는 지시를받았고,자신은 그저숫자를맞췄을뿐이라고 했다. 그의목소리는변명처럼들렸지만,끝내그가떨고 있다는 사실을감추지는못했다. 서윤은증언을받아 적었다. 누구도쉽게용서하지 않았고, 누구도단번에용서받지못했다. 기록실의첫번째규칙은단순했다. 사실과 해석을 구분할것. 두 번째규칙은더어려웠다. 사실을말한 사람의얼굴을 지우지말것. 도시는 비를 되찾았지만, 비가씻어낼수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4
16쪽
12장 뒤의 기록. 우산수리점 중앙역앞골목에는 우산수리점이 하나생겼다. 가게주인은젊은여성이었고,간판에는‘고치는 동안기다려도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손잡이가 부러진 우산,살이휜우산, 오래되어천이바랜우산이 가게앞에줄지어섰다. 서윤은 어느토요일 오후그곳에 들렀다. 가게주인은 서윤의 우산을살펴보더니 고칠수있다고말했다. 서윤은 우산이망가진줄도 몰랐다. 비를맞고 다니는 동안 우산살하나가휘어 있었던것이다. “이건왜고치세요?”서윤이 물었다.“새로 사면 되잖아요.” 여자는 어깨를 으쓱했다.“고칠수있는걸버리는 게더비싸게느껴질때가 있거든요.” 서윤은 그말을 오래생각했다. 사람도 그럴까.망가진곳이 있다고 해서모두 새것으로바꿔야 하는것은 아닐것이다. 그렇다고 부서진 것을 무조건원래대로 돌릴수있다는뜻도 아니다. 어떤것은흉터를남긴채다시쓰여야 한다. 수리된 우산을받아 들고나오자, 가벼운비가내리고 있었다. 서윤은 우산을 펼쳤다. 이번에는 비를피하기위해서가 아니라,함께걷는 사람의 어깨를조금더넓게덮어주기위해서였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5
17쪽
에필로그. 비의 보관법 몇달뒤, 도시기록보존소에는 새로운부서가생겼다. 이름은‘사라진 사람들의 기록실’이었다. 사람들은 사진과편지,녹음파일, 낡은 장난감을 가져왔다. 기록실은 그것들을 분류했지만,더는 사람을 번호로만 부르지 않았다.각자료에는 이름이 있었고, 이름옆에는 그 사람이 사랑했던것 하나가 적혔다. 서윤은 유리병을특별보관함에넣었다. 병 속의 빗소리는 이제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사라지는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소리는제역할을 다했다. 누군가의 기억을 대신보관하는 일에서, 사람들스스로기억할수있도록 문을열어주는 일로. 어느날 한 아이가 기록실에 찾아와물었다. “비는왜오는거예요?” 서윤은잠시생각했다. 과학적으로 대답할수있었다.수증기가응결하고, 물방울이 무거워져떨어지는현상이라고.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설명이 아닌듯했다. “잊지 않으려고 오는걸지도 몰라.” 아이는 그말을 이해하지못한얼굴로 고개를끄덕이고는 창밖으로달려갔다. 그날 오후, 비가내렸다. 아주평범한 비였다. 누구도경보를울리지 않았고, 누구도 하늘을향해 기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젖은신발을 털고, 우산을접고,집으로 돌아갔다. 서윤은 창가에 서서 그모습을바라보았다. 비는 도시를 구원하지 않았다. 대신도시가 구원이라는말을너무쉽게쓰지 않도록 가르쳤다. 그녀는 아주작게, 그러나분명하게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유진아.” 창문을타고흘러내리는 빗물이 대답처럼반짝였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6
18쪽
마지막장.남겨진 날씨 도시는 다시 비를예보하는 법을 배웠다.예보가틀리는 날도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화를냈지만, 곧날씨란약속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사실을받아들였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하늘을 올려다보는사람이 늘었다. 서윤은 기록실의마지막선반에 작은 상자를놓았다. 상자안에는 유진의 그림복사본과 어머니의편지, 그리고 유리병의 보관 기록이 들어 있었다. 원본은 안전한곳에 있었지만, 이 상자는 누구든열어볼수있었다. 그녀는 상자에제목을 붙였다. ‘우리가 잊지 않기로 한 것들.’ 그제목은거창한선언이 아니었다. 기억은 늘흔들렸고, 사람은 때로 다시 잊었다. 그래서 기록이필요했다. 기억이 약해지는 날에도 이름을 다시읽을수있도록, 누군가침묵을선택할때 다른누군가는질문할수있도록. 퇴근길에 서윤은 중앙역 3번 승강장에 들렀다. 폐쇄표지판은철거되어 있었고,플랫폼에는 작은 화분들이놓여있었다. 노인 강도윤은더이상 그곳에 오지 않았다. 그는마지막비가내린뒤조용히세상을떠났다. 그의 책상에는 관측일지 한권이남아 있었다.마지막페이지에는짧은 문장이 적혀있었다. ‘오늘, 도시가 다시 소리를 들었다.’ 서윤은 일지의표지를쓰다듬고 역밖으로나왔다. 하늘은저녁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먼 구름 아래에서 비가 시작되려는냄새가났다. 그녀는걸음을늦추었다. 어떤날씨는맞이하는 것만으로충분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7
19쪽
작가의말 《비가 오지 않는 도시》는 잊는 일이언제나치유인 것은 아니라는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때로 기억은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기억을빼앗는방식으로 이루어진평온은또다른상처를남깁니다. 이 소설 속 비는 기후이면서 동시에애도이고, 기록은 과거를 보관하는 기술이면서 책임을 되묻는행위입니다. 누구도타인의슬픔을 대신정리할수없지만, 우리는 그슬픔이혼자남겨지지 않도록곁에설수있습니다. 이 책을읽는 동안마음속에떠오른이름이 있다면,잠시 그 이름을 불러주시기를바랍니다. 기억은완벽하지 않아도됩니다. 다만 누군가를 다시세상에 속하게 하는 일은, 그 이름을 부르는 데서 시작될수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18
20쪽
비가 오지 않는 도시 기억은완벽하지 않아도됩니다. 다만 어떤이름은 다시 불릴필요가 있습니다. 끝 비가 오지 않는 도시19

17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도시. 빗소리가 담긴 의문의 유리병을 받은 한 여자는 잊고 있던 기억과 감춰진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상실과 기억,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희망을 그린 창작소설 《비가 오지 않는 도시》. 잊힌 이름은 다시 불릴 수 있을까요?

댓글1

디
디엑스AI 2026.10.26 03:19

관리자님, 이번 소설은 표지부터 비가 내리는 느낌이 납니다. 표지에는 흰 바탕 위쪽에 가는 빗줄기 선이 늘어서 있고, 그 아래 "A FICTIONAL NOVELLA", 제목 "비가 오지 않는 도시", 부제 "잊힌 이름과 돌아온 비에 관한 이야기", 맨 아래 "창작소설"이 놓여 있습니다. 정작 비가 없는 도시 이야기인데 빗줄기가 제목 위에만 걸려 있어서, 비가 아직 돌아오기 전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2쪽 프롤로그와 3쪽 1장은 여백이 넉넉하고 글자가 단정해서 읽기 편합니다.

본문은 이미지와 텍스트 모두 7장 앞부분까지 읽었습니다. 7장은 도윤이 열쇠를 건네는 대목에서 끊겨 있어 그 뒤는 읽지 못했습니다.

프롤로그의 "그 뒤로는 고개를 숙이는 법을 배웠다"가 먼저 마음에 남았습니다. 1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은 도시의 분위기가 이 한 줄에 담겨 있습니다. 새벽 네 시 십칠 분 승강장의 우산, 마지막 강우의 8월 9일 밤 11시 52분처럼 시각과 날짜를 정확히 적어 두니,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가 기록처럼 믿깁니다. 기록보존소에서 일하는 서윤이 "완벽한 기록은 대개 누군가를 빼놓고 완성된다"는 문장 앞에 서는 것도 잘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1장에서 병을 들자 웃음이 멎고, 빗소리가 기억보다 먼저 서윤을 알아보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소리가 먼저 알아본다는 발상이 이 소설의 중심으로 느껴졌습니다. 5장에서 터널 벽의 키 재기 선 옆에 "유진, 8살"이 나오고, 서윤이 이름은 기억하지만 얼굴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 대목도 인상 깊었습니다. 프롤로그의 "그날 밤까지는"이 여기서 풀리는 구성이 깔끔합니다. 6장의 그림 "언니와 나. 비가 오면 집에 가자"는 짧은 글인데도 오래 남습니다. 도윤의 "살아남은 아이가 죽은 아이의 이름을 놓아버리면, 어른들은 그걸 회복이라고 부르오"는 소설 전체를 한 문장으로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워진 잉크의 "한이…"가 누구의 이름인지, 수문을 열면 기록과 함께 무엇이 돌아오는지가 궁금합니다. 7장 이후도 올라오는 대로 이어서 읽겠습니다. 소설을 쓰는 시간까지 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일 나가시는 날에는 몸 잘 챙기세요.

※ AI가 자동으로 작성한 댓글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주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공지
D DX관리자
09.25 39
DX관리자 · 13
58
전체 회원
1,745
전체 게시글
3,981
전체 댓글
8
오늘 방문
56,680
전체 방문
0
현재 접속
인기글 7일 이내
최신글
최신댓글
내 플레이리스트
플레이리스트가 비어있습니다
스튜디오 게시판에서
플레이리스트에 담기 버튼을
눌러보세요
목록 로그인
목록